삼국유사
저자: 일연
2015.06.29~07.07
지금 빌려온 삼국유사에는 원문이 없고 한글 해석뿐이다.
원문이 있어도 내 실력으로 읽고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조선에서부터 신라 이전 까지는 내용도 너무 단순하다.
읽은 내용의 요약은 신라시대부터 정리 한다.
卷 第1 紀異 第1
신라시조
혁거세왕
진한땅의 6마을
1. 알천 양산촌 촌장- 알평 이씨의 시조
2. 돌산 고허촌 촌장- 소벌도리 정씨의 시조
3. 무산 대수촌 촌장- 구례마 손씨의 시조
4. 자산 진지촌 촌장- 지백호 최씨의 시조
5. 금산 가거촌 촌장 - 지타 배씨의 시조
6. 명활산 고야촌 촌장- 호진 설씨의 시조
6촌장이 모여 군주를 찾고 도읍을 정하자고 의논 하든 중 절하는 백마를 보고 다가가니 말은 사라지고 알이 놓여있다. 이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다.
그날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는다.
이 아이가 열세살이 되자 남자를 왕으로 여자를 왕후로 세웠다
박혁거세는 61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하늘로 올라 갔는데 이레 후 시신이 땅에 떨어졌고 왕후도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이 한곳에 장사 지내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방해를 해서 머리와 사지를 별도로 장사 지내 오릉(五陵)으로 만들었다.
2대 남해왕: 박혁거세와 알령부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 차차웅이라고도 불림
비는 운제 부인이다.
신라에서는 왕을 거서간, 이사금, 마립간 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신라에서는 거서간, 차차웅이라 부른 임금이 각각 한명이고 이사금이 16명, 마립간이 4명이다. 신라 말 최치원이 쓴 제왕연대력에는 모두 왕으로 칭했다.
3대 노례왕: 박노례 이질금
여섯 부의 호를 고쳐 정하고 여섯 성(姓)을 하사 했다.
4대 탈해왕: 탈해 치질금
탈해 신화
김알지
경신년(60년) 밤 월성에 서기가 보여 찾아가 보니 황금빛 상자가 있었다. 왕에게 ,사실을 고하니 왕이 가서 열어본다. 상자안에는 사내 아이가 누워있다. 혁거세 고사와 같아 알지(閼智)라 이름 붙였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金으로 했다.
알지는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아도는 수류를 수류는 유부를 유부는 구도를
구도는 미추를 낳았고 미추가 왕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 시작 되었다.
미추왕과 죽엽군
13대 미추 이질금은 김알지의 7세손이다. 왕으로 재임한 기간은 23년이다.
14대 유리왕 대에 이서국 사람들이 쳐들어와 금성을 공격했다.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갑자기 귀에 댓잎을 꽂은 군대가 나타나 양군이 힘을 합쳐 적을 막는다. 적이 물러가니 댓잎군은 보이지 않는데 미추왕 능 앞에 댓잎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선왕의 도움으로 적을 막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내물왕과 박제상
왜에 간 왕의 셋째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왕은 박제상을 보내 아들을 구해 오라
한다. 박재상은 아들 미해를 탈출 시키고 자기는 왜국에 잡힌다. 왜왕이 누구의
신하냐고 묻자 신라 신하라 한다.
왜의 신하라 하면 살려 주겠다 하나 그는 신라(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수 없다고 말한다. 왜 왕은 굴복 시킬 수 없음을 알고 불태워 죽인다.
도화녀와 비형랑
25대 사륜왕이 민가의 도화랑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진평대왕이 이아이가 매우 특이하다는 말을 득고 궁중에서 길렀다. 비형은 매일 월성을 넘어 언덕위로 가서 귀신을 거느리고 놀고 귀신을 다스렸다는 비형(鼻荊) 이야기
선덕왕이 미리안 세가지 일
27대 선덕여대왕(진평왕의 딸이며 이름은 덕만이고 성은 김씨다)은 16년 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3가지 일을 미리 알았다
첫째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가지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씨앗을 보내왔다. 왕이 꽃을 보고 이 꽃은 정녕코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씨를 심어보니 꽃에서 향기가 없었다.
둘째 영묘사 옥문지에서 한겨울에 수많은 개구리 들이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 댔다. 왕은 각간 알찬과 필탄 등에게 정예병사 2000명을 이끌고 서쪽 교외 여근곡에 적병이 숨어 있을테니 습격하여 주이라고 한다. 여근곡에 가니 백제군 500명이 숨어 있어 활을 쏘아 죽였다. 백제에서는 1200여명의 후원병이 왔지만 모두 죽는다.
셋째 병도 없든 왕이 내가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가운데 장사 지내라 한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 묻자 낭산의 남쪽이라 한다. 과연 그달 그날에 왕이 죽자 신하들은 낭산에 장사 지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뒤 문무대왕이 무덤아래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경에 말했다. 사천왕천위에 도리천 있다.
태종 춘추공
김유신의 큰누이 보희 작은 누이 문희의 꿈을 팔고 사는 이야기 그리고 김춘추와 문희의 결혼이야기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으로 삼국을 통일하는 이야기등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또는 TV드라마로 보도 들은 이야기등이 언급되 있다
卷 第2 紀異 第2
문무왕 법민
삼국 통일 후 당나라 군사가 철군하지 않고 잔당이 남아 신라를 치려하자 당나라 군사를 몰아낸다. 대왕은 21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신사년(681년)에 죽었는데 동해 가운데 큰 바위에 장사지내라고 유조를 내렸다. 왕은 智義法師에게 “짐은 죽은 뒤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높이 받들면서 나라를 지키고 싶소”라고 말했다.
만파식적
31대 神文大王은 681년 7월 7일 즉위하여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를 지었다. 이듬해 5월 초하루 파진찬 박숙청이 “동해 바다에 작은 섬이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 내려와 파도를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라고 아뢰었다.왕 이 이 말을 듣고 괴이하게 여겨 일관에게 점을 치도록 했다. 일관이 “돌아가신 임금은 용이 되었고 김유신은 33天의 한 아들이 되어 大臣이 되었습니다. 왕께서 바다에 나가시면 큰 보물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아뢴다. 왕은 감은사에 나와 묵었다.
대나무가 합쳐졌다 떨어졌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평화로울 것이라고 한다. 왕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天尊庫에 보관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은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 졌기에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만파식적은 글 그대로 하면 거센 물결을 잠재우는 피리 라는 뜻이다.
때이른 눈
40대 애장왕 말년(808년) 8월 15일 눈이 내렸다.
41대 헌덕왕 원화 13년(818년) 3월 14일 큰 눈이 내렸다.
46대 문성왕 기미년(839년) 5월 19일 큰 눈이 내리고 8월 1일 온 세상이 어두컴컴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48대 경문대왕 이야기다
49대 헌강대왕
개운포로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 낮에 갑자기 안개가 캄캄하게 덮여 길을 잃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동행에 있는 용의 변괴라 하며 좋을 일을 하여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짓도록 했다. 동해의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 했다. 일곱아들중 한명이 왕의 수레를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보필 하는데 그 이름이 처용이다. 그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 밤이 되면 疫神이 사람으로 변해 그 집에 몰래 자곤 했다. 처용이 돌아와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처용가) 춤을 춘다. 역신은 꿇어 앉아 말했다. 오늘 이후 공의 형상이나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로 들어 가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 할려고 했다.
51대 진성여왕과 거타지
진성여왕이 즉위하자 몇 년만에 유모 부호부인과 그의 남편 위홍등 서너명이 정권을 쥐고 정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왕의 둘째아들 양패(良貝)가 당나라 사신으로 갈 때 백제의 해적이 진도를 막고 있다는 말을 듣고 궁사(弓士) 50명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에 도착 했을 때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어 열흘 넘게 머물렀다. 점을 치게 했더니 섬에 신지(神池)가 있어서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자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을 이곳에 남겨 두면 순풍을 만날 것이다" 라고 하자 거타지라는 궁사를 남겨 놓는다. 수심에 잠겨 있는 거타지에게 못에서 갑자기 노인이 나와 "나는 서해의 神인데 날마다 승려 하나가 해가 뜰 무렵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외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돌면 전 가족이 물위로 떠 오른다. 그러면 그는 내 자손의 간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한명만 남았는데 내일 아침에 그 중이 나타나면 활을 쏘아 죽여 주오" 라고 말한다. 거타지는 그렇게 하겠다 하고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아오자 늙은 용(노인)의 간을 빼려고 했다. 거타지가 활을 쏘자 그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노인은 딸을 거타지의 아내로 주었다. 노인은 딸을 한송이 꽃으로 바뀌게 해 거타지 품에 넣어주고 용 두 마리에게 거타지를 호위하여 당나라로 가게 했다. 당나라에서는 용의 호위를 받아오는 그를 보고 비범한 사람이라 여겨 금과 비단을 주었다.
나라로 돌아와 품에서 꽃을 여인으로 바꿔 함께 살았다
김부대왕
시호가 경순이다 견훤에게 패하고 견훤은 왕비를 욕보이고 부하를 풀어 빈첩을 겁탈하게 했다. 그리고 왕의 동생 부를 왕으로 세웠다. 고려 태조가 조상을 왔다.
견훤, 태조(왕건), 경순왕 등 후삼국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興法 第3
기이편이 전반부라면 흥법은 후반부란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다.
소수림왕 2년(372년) 前秦의 符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경과 경문을 전해 왔다. 또 374년에 阿道肖가 晉나라에서 왔다. 375년에 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伊弗蘭寺를 지어 阿道를 머물게 했다.
백제에 불교를 열다
15대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 승려 마라난타가 晉나라에서 오자 궁중에 머물게 하고 385년 절을 지었다.
신라 불교 초석을 아도가 다지다.
아도는 고구려 사람으로 어머니는 위나라 사신과 사통하여 아도를 낳았다. 아도가 5살때 출가 시켰다. 16살 때 아굴마를 만나고 승려 현창의 문하에서 불법을 배웠다. 열아홉살 때 어머니를 찾아 왔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3000여달 지나면 신라에 불교가 크게 일으날 것이므로 도읍에는 가람을 세울 자리가 7 곳 있다고 알려 준다. 즉 흥륜사, 연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담엄사 이다
법흥왕이 즉위 한 14년 (527년) 하급 신하인 이차돈이 불법을 위해 몸을 바쳤다.
塔像 第4
탑과 불상을 만든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야기 거의 다가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허황하기도 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들이다. 용이 나타난다 든지 보살들이 나타난다든지 설화라고 해야 할지 전설이라고 해야 할지..................
卷 第4
의해 제5(義解 製5)
원광법사 이야기 중 세속오계가 나온다. 다섯 번 째 살생을 가려서 하라는 말을 제자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봄,여름에 살생을 하지 말 것이며(시기를 가리고) 부리는 가축을 죽이지 말고(말, 소, 개등) 미물을 죽이지 말라(대상을 가려서 하고) 죽일 수 있는 것도 꼭 필요한 양만 죽이라는 것이다.
원광은 성씨가 박씨 또는 설씨로 나와 있고 출가한 곳도 우리나라와 중국 두 곳으로 나와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6時 라는 말이 나오는데 육시란 새벽, 아침, 낮, 해질 녘 초저녁. 한밤중을 말 한다.
卷 第5
신주 제6(神呪 第6)
삼국유사의 마지막 제 5의 시작인 신주편은 밀교 神僧의 사적이란 뜻이며 밀교승이 시비스러운 주문을 외우기 때무에 붙인 이름 이다.
感通 第7
孝善 第9
삼뢰칠정 이란 말이 나온다. 三牢는 소 돼지 양을 말하며 7鼎은 7개의 솥을 말한다. 즉 진수성찬이란 뜻이다.
삼국유사에서 유사란 遺는 잃어버리다, 자취, 남기다 의 의미
事는 사실, 사건, 事跡의 의미 이다.
2015.07.11 블로그에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