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통신을 읽고
퇴로통신 중 “삼은정을 생각하며...”를 읽어면서 떠오른 내 이야기 입니다.
50년도 더 넘은 아련한 추억은 안개속으로 젖어들어 보일듯 말듯 합니다. 사성 아제와는 나이가 비슷해 고교시절 겨울 방학때 같이 놀던 생각이났고 아제와 아지매의 연애 시절을 읽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운 나이에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게 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지매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닌 파키스탄에 세운 회사를 생각하면 아지매의 대단함에 존경의 마음이 일어났고 아울러 20년이 채 못된 나의 파키스탄 생활이 생각 났습니다.
1998년 3월 5일 날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타이 항공을 타고 방콕 공항에 내려 환승 대기중에 파키스탄에 전화를 했습니다. 라호르 공항에 도착하면 내 이름을 적은 피킷을 들고 아바리 호텔에서 픽업을 할 것이고 호텔에서 자고 난 후 영수증에 사인만 하면 숙박비는 회사에서 지불 할 것이니 체크아웃 후 이슬라마바드로 오라고 했습니다. 방콕에서 파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탓습니다. 라호르 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경....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으니 11시 반 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픽업하러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호텔까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바리 호텔 부스가 있고 몇 사람이 안에 있어 그쪽으로 갔습니다. 호텔 직원은 아니고 모두 택시 기사 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몸집이 작은 기사를 선택하고 택시비를 흥정 했습니다. 10달러를 달라기에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얼마 주겠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택시비도 에누리가 되나 보다 생각 했습니다. 5달러를 주겠다고 했더니 7달러를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택시를 탓습니다. 정말 택시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폐차장에서나 봄직한 차를 타고 호텔로 갔습니다. 잔돈이 없어 10달러를 주었더니 현지 화폐로 100루피를 돌려주었습니다. 100루피가 몇 달러나 되는지도 모르고 받았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약 2달러였습니다. 그후 회사에서 이야기를 했더니 택시 요금은 2~3달러면 충분 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는 내 이름으로 예약된 방이 없었습니다. 또 호텔비를 흥정 했습니다. 100달러인데 외국인이니 특별히 90달러에 방을 주겠다고 하기에 만족 하고 그 곳에서 1박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나를 DSF(Dewan Salman Fiber)에 소개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교통질서는 엉망이었고 주변 모습은 꼭 한국의 1950년대 후 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DSF 공장으로 가는데 옆에 나를 소개한 한국인이 없었다면 꼭 납치되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DSF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칙사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며칠 후 DSF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업이 결정되어 그 때부터 3년 반을 파키스탄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은 금요일이 반나절 근무 토요일은 전일 근무였습니다. 우리는 금요일을 전일 근무하고 토요일을 반나절 근무하기로 하고 매주 파키스탄 관광을 다녔습니다. 회사에서 30분 거리에 탁실라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불교 유적지였습니다. 그 곳 박물관에 갔습니다. 입장료 4루피를 주고 들어갔는데 여러 유물이 있었지만 불상의 머리 부분만 한곳에 모아 두었더군요. 지진으로 부러졌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과거엔 불교가 성했지만 뒤에 이슬람 국가가 되면서 파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또 다른 유적지에 갔더니 목이 부러지고 없는 불상도 많았고 온전한 불상도 많이 있었습니다. 현지인이 이곳저곳 안내를 하더니 으슥한 곳으로 가 안내비로 150루피를 달라고 했습니다. 100루피를 주었는데 엄청난 바가지를 쓴 줄은 뒤에 알았습니다. 박물관 입장료 4루피면 탁실라의 모든 유적을 다 볼 수 있다고 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입장료 4루피인데 한곳 안내비를 100루피나 주었으니....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는 폐샤와르에 갔습니다. 무기상을 구경 했는데 권총이며 장총이며 온갖 무기류가 다 있었습니다. 상점은 꼭 판자집 같았는데 이런 곳에서 무기를 팔고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 하게 느껴졌습니다.
국경 부근에 갔더니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운전기사가 못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한참을 달려도 별로 볼게 없어서 돌아 나오는데 군인들이 차를 멈추게 했습니다. 서투른 영어로 한국에서 파키스탄의 경제 발전을 위해 왔고 회사의 중역 이름을 들먹이고 출입금지 팻말을 못 봤다고 사정을 하고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회사의 중역 한 사람은 옛날 자유당 시절 정치 깡패로 유명했던 이정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곳 시장엘 갔더니 비단 상점이 있었습니다. 한국산 비단이 아주 고급품으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제품이 가장 많았고 비싸기도 했습니다.
2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라호르에서 약 7시간의 여유시간이 있어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공장에서 출발하기 전에 라호르 출신의 건축과장에게 관광할 곳 자료를 받아 왔기에 택시기사에게 관광지 몇 곳을 지정하고 출발 했습니다. 먼저 박물관에 갔는데 몇 곳 전시실을 보고 나니 박물관 문 닫을 시간이라면서 나가야 한답니다. 라호르 성으로 갔더니 그 곳은 벌써 문을 닫았고요. 옆에 있는 바샤이 모스크도 문을 닫았고..
결국 이 날은 관광도 못하고 말았지만 그 후 휴가 나올 때 마다 앞에서 언급한 곳 말고도 쟈항길 툼, 인도와의 국경 등 거의 다 보았습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장 가까운 머리라는 피서지에 갔습니다. 여름엔 기온이 40℃를 오르내리는데 머리는 35℃정도 였습니다. 해발고도 약 2600미터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본 것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가씨가 핸드백을 들고 가는데 핸드백엔 한글이 크게 써 있었습니다. 한국의 유치원 어린이의 가방이었습니다. 겨울에 이 곳에 간 적이 있었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중간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차를 돌릴 만큼 여유 공간이 없었는데 주민들이 차 뒤편을 밀어서 그 자리에서 돌려주었습니다.
북쪽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럼 산맥 아래로 3번 관광을 갔습니다. 길깃, 스카르두 그리고 스와트 입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비행기 요금이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은 국내선이지만 여권이 필요 했습니다. 내가 파키스탄에서 살아 온지 1년이 넘었으니 내국인 요금으로 하자고 했더니 크게 웃으면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길깃으로 갔습니다. 5월 초인데도 6~7천 미터 고산지대는 눈으로 덮여있어 꼭 하얀 솜으로 덮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기장은 계곡 사이로 세이프 울 말록 호수가 보인다고 했는데 눈 때문에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월말쯤 주말엔 이 호수에도 가봐야지 생각 했습니다. 길깃에서도 몇 가지 불교유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찦을 렌트해서 계곡 깊은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계곡 여기저기에 현수교가 놓여 있었는데 운전기사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건설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세이프 울 말룩 호수로 갔습니다. 회사에서 내준 승용차를 타고 출발 했는데 한 시간 쯤 가다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운전사에게 수리 해 회사로 돌아가라 하고 작은 승합차를 빌려 타고 갔습니다.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때 쯤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두워 졌습니다. 밤하늘에 주먹 같은 큰 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은 본적이 없었는데... 다음 날 아침 말을 빌려 타고 호수로 갔습니다. 중간에 내려 걸어올라 갔는데 경사가 심해 내려 올 때 걱정이 되어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높은 산중에 있는 호수였는데 호수 가장 자리만 눈이 녹아 있고 사방이 눈 뿐 이라 별로 볼 것은 없었습니다. 현지인의 말로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 했습니다.
로타스 성 구경을 갔습니다.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파키스탄의 강에는 둑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폭은 매우 넓고 강물은 얕았지만 승용차로는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옆에 보니 트럭을 수리하는 사람들이 있어 옆으로 갔더니 곧 수리가 끝나는데 다 고치면 무료로 태워 주겠다고 했습니다. 성으로 가니 그 웅장함에 기가 팍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보는 성과는 높이에서부터 달랐고 성의 문은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고교시절 중세기 영화에서 본 성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관광지를 두고도 전혀 개발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이상 했습니다. 나올 때도 그 트럭을 타고 나왔는데 공짜로 태워 주겠다더니 200루피를 달라고 해서 주고 나왔습니다. 처가 왔을 때, 그리고 아들이 왔을 때도 이곳을 구경 시켰습니다.
모헨조다로 유적도 가 보고 싶었지만 거리도 너무 멀고 교통도 불편하다고 해서 못 보고 온 것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더 많은 관광지를 다녔는지 공장장에게 주말에 차를 달라고 했더니 50년이 넘도록 파키스탄에 살아온 자기보다 우리가 더 많은 관광지를 다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회상을 하다 보니 함께 일 했던 중역들이나 부 과장들 모두 어떻게 지내는지 긍금하고 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