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

영웅 고선지

경돈 2018. 8. 30. 10:20

영웅 고선지   황인경  2018.8.10  ~08.19

『영웅 고선지』는 고선지가 어린 시절을 백두산에서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선지는 백두산에서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기르며 아버지 고사계의 의형인 사부 해연 장군으로부터 혹독한 수련을 받는다. 고선지는10여 년에 걸친 백두산에서의 수련을 통하여 『금해병서』를 비롯해 고구려의 병법과 전략, 전술 등을 익혔는데, 이것은 이후 수천 미터의 산맥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광활한 대륙을 호령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고선지는 이후 아버지 고사계가 있는 당나라로 건너와 740년에서 751년까지 해발 5천 미터에 이르는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수차례 서역정벌을 시도하여 무려 72개국에 이르는 서역 국가들을 정벌, 실크로드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였다.그중 751년 고선지가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사라센의 아랍연합군과 벌인 탈라스 전투는 역사상 최초의 동서양 전투로 기록되는데, 이때 당 군사들이 포로로 끌려가면서 제지술과 화약 제조술, 나침반 등이 유럽에 처음으로 전파되었다. 이는 신(神) 중심의 유럽 사회를 인간 중심의 인문 사회로 바꾸며 유럽문명을 깨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고선지를 '유럽 문명의 아버지' 로 평가하는 것이다.이러한 업적을 쌓는 중에도 고선지는 패망한 나라의 후예라는 이유로 한족들에게 '구려당 놈'이라는 갖은 핍박과 질시를 받았다. 하지만 고선지는 그러한 모욕을 실력과 훌륭한 인품으로 이겨내고 끝내 당나라 안서도호부의 제1인자에 올랐다. 서역 72개국을 다스리며 세기의 영웅으로 우뚝 선 것이다.그러나 고선지는 755년 안록산의 난(亂)을 진입하는 도중 모함에 의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양귀비에게 빠져 분별력을 잃고 모함을 그대로 받아들인 당 현종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었지만 고선지는 자신을 따르던 고구려 유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더 큰 명분으로 반역의 모함을 받아들였다.이렇듯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고선지가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우리 땅이 아닌 당나라에서 살다간 고구려 유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나마 국경을 넘어 세계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의 일대기를 소설책으로 만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당 현종, 양귀비, 안록산, 부용, 혜초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이 책에는 고선지뿐만 아니라 당 현종, 양귀비, 안록산, 부용, 혜초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8세기 초,중반 세계사의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안내될 것이다.즉위 초기 선정을 베풀다가 희대의 여인 양귀비를 만나 그녀의 치마폭에서 놀아나고 급기야 양귀비의 양자이던 안록산이 반란의 깃발을 올리게 만든 당 현종, 고선지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잃고 지리산에서 활동하다 신라의 고승 혜초와 인연을 맺고 훗날 조국을 위한 불사(佛事)를 일으킨 백제유민 부용.숨 가쁘게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웅 고선지』는 정통 대하 역사소설이 갖는 흥미진진함을 부족함 없이 들려준다.또한 부용의 발과 눈을 통해 서역 여러 나라의 문물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고, 고선지의 활약상으로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되었던 지역의 혈투도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더불어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 등을 넘나들며 고선지가 치른 전투는 세계사의 이모저모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리고 당나라와 사라센의 만남을 통해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자 종교 간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의 한 면도 읽을 수 있다.그 밖에 훈자왕국의 울토와 멘시아, 아랍인인 후세인과 가루샤, 소그드인인 케야르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동시대 여러 민족들의 삶은 『영웅 고선지』를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1250여 년 전,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을 고선지와 고구려의 위대한 꿈을 오늘에 되살린다!고선지는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서 활동한 고구려 유민(流民)이다. 중국의 사서인 『신당서』와 『구당서』는 "고선지는 고려인이다(高仙芝 高麗人也)"라고 적고 있다.고구려 유민으로 광활한 실크로드를 지배한 고선지 장군을 조명하는 것은 고구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고선지 장군을 통해 다시 한 번 대제국 고구려의 혼을 되새기며 한민족의 긍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고선지 장군이 이뤄낸 서역 72개국 정벌과 동서양 최초의 전투, 그에 따른 제지술의 유럽 전파 등의 업적은 '세계사를 뒤흔드는 문화대혁명'이었다. 고선지 장군이 고구려의 후예이자 한민족의 핏줄이었다는 사실은,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벅찬 자긍심으로 다가올 것이다.1250여 년 전, 나라 잃은 한을 가슴에 품은 채 분노와 슬픔을 삭이며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을 고선지 장군. 모래 위 한 줌 꿈으로 사라졌지만, 광야를 거칠 것 없이 내달리던 그의 삶의 족적은 제국 고구려의 위대한 꿈을 오늘에 되살리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