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묘사화
성종의 4번째 부인 (정현왕후 윤씨)과 사이에 난 아들 진성대군(연산군의 이복 동생)이 박원종의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다. 박원종은 반정을 일으키기전 신수근을 찾아가 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나 불사이군이라 하며 거절하자 거사가 탄로 날것을 두려워하여 신수근을 죽인다.(신수근의 누이는 연산군의 처이고 그의 딸은 진성대군의 처이다.)
중종(연산군의 이복동생)-인종(장경왕후의 아들)- 명종(문정왕후의 아들)-선조(덕흥대원군
단경왕후 신씨 아들)
(중종 즉위 후 폐출)
장경왕후 윤씨
문정왕후 윤씨
청빈 안씨 덕흥대원군(청빈 안씨 아들)
장경왕후는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죽는다.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 두 사람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폐비 신씨를 불러들이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친다.
김안로는 중종의 처남이자 조카사위인 윤임을 초청하여 경빈 박씨나 희빈 홍씨는 아들이 있으므로 원자(훗날 인종)을 잘 돌보기 어려움으로 차라리 궁 밖에서 간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이를 들은 중종은 궐 밖에서 간택하고 17세의 윤지임의 딸(문정왕후)을 간택한다.
반정으로 왕이된 중종은 궐내에 세력이 없다. 왕이 된 후 공신들의 눈치 살피느라
10년을 허송세월 한다. 조광조는 유배된 김굉필을 찾아가 문하가 되었고 김굉필은 자신의 학문 체계를 젊은 조광조에게 가르치고 이해시키려 애썼다. 김굉필은 사약을 받았고 후에 조광조는 등용 된다.
중종의 신임을 받게된 조광조는 공신록에 올라있는 공신들 중에는 공이 없는 자가 많다면서 정국공신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청한다. 중종은 이미 공신록에 올라 있는데 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훈구 대신들은 조광조를 제거할 생각을 갖게 되고 중종은 너무 커버린 조광조를 물리치고 싶어 한다. 중종의 후궁인 희빈 홍씨의 아버지 홍경주는 희빈 홍씨를 찾아가 나뭇잎에 走肖爲王이라는 글을 쓰게 한다. 꿀로 쓴 글자라 벌레들이 갈아 먹자 주초위왕 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이를 본 사람들은 조광조가 왕이 되려고 한다고 해석한다. 결국 조광조 뿐 아니라 많은 조광조 지지 세력이 유배가게 되고 결국 조광조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는다.
기묘사화는 중종 14년(1519년) 훈군파 재상들이 조광조등 젊은 선비를 몰아내 죽이거나 귀양 보낸 사건이다.
조광조는 이상정치 실현은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도학정신은 후세에 계승되어 이황, 이이 같은 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요약
시기: 1519년
왕조: 조선 중종
계기: 위훈 삭제 사건에 대한 반격으로 훈구세력들이 조광조를 모함.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 반정공신 홍경주의 딸 희빈 홍씨를 앞세워 왕이 자주 거니는 후원 길목의 나뭇잎에 꿀로 '走肖爲王'이라 써놓고 이를 벌레들이 갉아먹게 함으로써 일부러 중종의 눈에 띄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광조의 개혁 정책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중종이 이를 빌미로 조광조를 제거한다.
결과: 개혁 정책을 폈던 풍운아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고, 사림세력들은 다시 한번 큰 화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중종의 개혁정치도 끝이 났다.
2016.08.25 블로그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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