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아버지

경돈 2018. 1. 11. 16:55

2018년 1월 5일 새벽 2시 45분경 아버지께서 새상을 떠나쎴다.

1925년 생이시니 93세 해수로만 말하면 94세인 셈이다.

 2017년 12월 중순경 아버지께서 위암 수술한곳에 이상이 있는것 같다고 하셔서

부산대학교 병원 암센터에서 CT 촬영을 했는데 그 결과는 2018년 1월 5일 나온다고 하셨다.

 17년 12월 말경(27일 경?) 주무시고 일어나 어머니께 말씀하시길 지난 밤엔 통증이 있어 잠을 잘 주무시지 못했다고 하셨단다.

18년 1월 1일 마산 우리집으로 오시기로 했는데 30일경엔 아버지 건강상태가 너무 안좋아 어머님과 희영이 그러한 몸으로 마산 갈 수 없다고 말리셨단다.

2018년 1월 1일 희영이네 식구 모두가 마산으로 와 일찍 차례를 지내고 식사도 않은체 해운대 아버님댁으로 갔다. 나는 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강재 그리고 숭재와 2대의 차로 해운대로 갔다.

아버지께서는 주사를 맡고 계셨다. 새배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강재는 서울로 나는 마산으로 돌아왔다. 2일 아침 아버지께서 입원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희영이가 부산 대학교 병원으로 가 의사를 만나 CT촬영 결과를 듣고 입원 관계를 이야기 하니

병실이 없어 병실이 나는 대로 입원키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CT촬영 결과는 강윤이를 통하여 위내 혹이 9센티 이상 커져있고 간으로 전이 되었고 임파선에도 전이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

4일 낮 2~3시경에 입원을 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간병문제로 내가 6일 부산 갈려고 했는데 희영이와 주희가 의논을 해서 나는 7일날 오라고 했다. 그런데 밤 2시40분경 희영이 한테서 아버지가 안되겠다고 하면서 빨리 부산대 병원으로 오라고 전화가 와서 부산으로 갔다. 5시 조금 못되 도착을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희영이 말로는 내게 전화한 직후 바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직전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부축을 해서 화장실에 갔는데 희영이가 아버지 상태를 확인하니 바지 앞을 끌어 올리신 후 뒤를 올리지 못해 희영이가 도와 드리려고 하니 아버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으시기에 부축을 했으나 힘이 달려 변기위에 앉혀 드린 후 비상벨을 눌러 직원을 호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병실로 아버지를 옮기자 마자 운명하시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아버지 임종도 못보았다.

장례는 아버지 뜻에 따라 천주교식 의례를 따랐다. 7일이 일요일인데 이날은 영결미사가 안되기에 희영이는 4일장을 원하는 것 같았지만 어머님이 3일장으로 하라고 해서 3일 장으로 끝내고 9일 삼오제를 마쳤다.

천주교 의식을 따르다 보니 탈상의 개념이 없다. 아버지 말씀대로 100일 미사를 드리고 탈상하기로 했다. 혼백이 없기에 매혼이라는 절차는 지킬 수 없다.

내가 장남으로 아버지 뜻에 따라 천주교의식을 따랐으나 생전에 아버지를 설득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아버지께서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최소경비의 장례를 원하셨는데 막상 장례를 치르고 보니 전통장례를 치르는 것과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고 절차도 별로 간소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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