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11대~14대)

경돈 2016. 12. 26. 21:29


제 11대 중종실록

제11대 중종(1488년~1544년)

성종 차남 11대 중종(진성대군)

정현왕후(성종의 3번째 비)

재위기간: 1506년 9월~1544년 11월 38년 2개월

부인 10명 자녀 9남 11녀

단경왕후 신씨- 자식 없음

장경왕후 윤씨-제 12대 인종 외 호혜공주

문정왕후 윤씨-제 13대 명종 외 4명의 공주

후궁이 여러명 있다 그중 창빈 안씨의 2남 1녀중 한명이 덕흥대원군(선조의 아버지)으로 그의 3째 아들이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에 오른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박원종, 성희안, 이조판서 유순정 등의 거사로 연산군이 폐위 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다.

기묘사화-반정세력이 권력을 잡고 중종은 실권이 없었다. 조광조등 사림파를 등용하여 개혁을 시도 하지만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에 염증을 느끼든 차 조광조를 탄핵하는 소가 올라와 파직하고 개혁에 실패 한다.

단경왕후 신씨는 반정에 반대 해 박원종에 의해 살해 된 신수근의 딸이라 폐위 된다. 영조 때 복위되어 단경왕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장경왕후 윤씨는 중종의 후궁으로 있다가 단경황후가 폐위되자 왕비에 책봉 되었다.

문정왕후 윤씨는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자 1517년 왕비로 책봉 되었다.

1545년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8년 동안 수렴청정 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 했다. 친정 동생 윤원형에게 정권을 쥐게하고 인종의 외척 윤임 일파 제거를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을 죽이고 윤원로를 귀양 보낸다.

서경덕. 황진이가 이 시대 인물이다.

제12대 인종실록

중종 장남 제12대 인종

장경왕후(두번째 비) 인성왕후 박씨

귀인 정씨

제12대 인종(1515년~1545년)

재위기간: 1544년 11월~1545년 7월 9개월

부인 2명 자녀 없음

인종은 윤달 포함 9개월간 보위에 앉은 가장 짧은 치세를 남긴 왕이다. 생모 장경왕후가 그를 낳고 7일 만에 죽자 문정왕후(중종의 세 번째 비) 손에서 자랐다. 30세에 왕위에 올랐고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문정왕후 자신이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제13대 명종실록

중종 차남 제13대 명종

문정왕후(3번째 비) 인순왕후 심씨

제 13대 문종(경원대군 1534년~1567년)

재위기간: 1545년 7월~1567년 6월 22년

부인 1명 자녀 1남(순회세자)

12세에 왕위에 올랐기에 8년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 한다.

인순왕후 심씨 사이에 낳은 아들(순회세자)가 있었으나 13세에 요절하여 더 이상 후사가 없다.

을사사화-인종의 외척(장경왕후-중종의 두 번째 비)과 명종의 외척(문정왕후-중종의 세 번째 비)의 세력 다툼. 인종의 외척을 대윤이라 하고 명종의 외척을 소윤이라 한다. 소윤의 실권자는 문정왕후의 형제다. 소윤이 대윤을 처형한 사건을 을사사화라 한다.

양제역 벽서 사건, 임꺽정의 난 을묘왜변이 이 시대에 발생함.

이언적, 이황 등이 이시대 인물이다.

제 14대 선조실록

중종 9남 덕흥대원군 3남(하성군) 제14대 선조

창빈 안씨 (하원군, 하릉군, 하성군)

제14대 선조(하성군 1552년~1608년)

재위기간: 1567년 7월~1608년 2월 40년 7개월)

부인 8명 자녀 14남 11녀

의인왕후 박씨-후사 없음(1569년 왕비 책봉 1600년 사망

인목왕후 김씨-1남 1녀(1602년 왕비 책봉 영창대군의 母 1606년 사망)

공빈 김씨-2남 (작은 아들이 제15대 광해군, 큰아들이 임해군)

인빈 김씨-4남 5녀(정원군이 제 16대 왕인 인조의 아버지 이다)

16세에 왕위에 오르고 명종의 비 인순황후가 수렴청정 했으나 친정할 능력이 있다하여 17세에 편전을 넘겨받았다.

1606년 영창대군이 태어났을 때 광해군이 세자의 지위에 있었다.

김효원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전랑직에 천거 되자 심의겸은 그가 윤원형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권세에 아부한 소인배라 하며 적임자가 아니라 함. 전랑직에 취임 후 얼마 뒤 김효원은 다른 자리로 이동하고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후임으로 천거되자 왕의 외척이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김효원이 반대 함. 이들 두 사람의 대립이 붕당으로 발전함.

동인: 김효원 파(주로 영남학파)

서인: 심의겸 파(주로 기호학파)

동인 서인

남인(이황의 문하) 북인(조식의 문하) 정철

유성룡, 우성진 이산해, 이발

대북(노장파) 소북(소장파)

골북 육북 중북

임진왜란(1592년~1598년 1차 임진왜란, 2차 정유재란)

통신사 황윤길(서인)- 왜가 침략 할 것이라 주장

김성일(동인)- 왜는 침략 안 할 것이라 주장

명은 조선의 요청으로 대규모 파병을 하였고 이로인해 명은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어 여진족에게 망하게 된다.

왜는 조선에서 퇴계집등 중요한 서적을 가져가 문화 발전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다. 조선학자로부터 성리학을 배우고 끌고간 도공으로부터 도자기 제조 그리고 인쇄술 등을 배우게 된다.

조선은 국방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 권률, 곽재우, 유성룡, 이이, 이황, 정철 등이 이 시대 사람이다.

2016.12.26 블로그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