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광해군 일기
선조 차남 제15대 광해군
공빈 김씨 문성군 부인 유씨 질(폐 세자)
숙의 윤씨 1녀
제 15대 광해군(1576년~1641년)
재위기간: 1608년 2월~1623년 3월 15년 1개월 유배기간: 18년
부인 2명 자녀 1남 1녀
선조의 적자는 없고 서자만 있어 공빈 김씨와의 사이에 난 차남을 세자로 책봉 했으나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명나라가 거절한다.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활약으로 대신들의 명망을 얻어 세자로 받아들여진다.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낳자 선조는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우고 싶었지만 그 전에 죽고 만다.
인목대비의 언문 교지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은 등극 후 민생정치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외교에도 힘썼다. 그러나 정적 제거를 위해 형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 시키는 등 만행도 있었다. 재위기간 15년 동안 대북파가 정권을 잡았고 많은 정적을 처단 했으나 결국 인조 반정의 빌미를 제공 했다. 즉 광해군은 등극하자 자신의 불안정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임해군, 영창대군, 능창군 등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과 소북파, 서인,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인목대비 마저 서궁에 유폐시키고 존칭도 폐한다. 이것이 인조 반정의 빌미가 되었다.
허균(홍길동전), 허준(동의보감) 등이 이 시대에 지어졌다.
이 책 저자의 견해로는 광해군이 정적을 제거 하는 경위가 태종이나 수양대군 보다 나쁘지 않았고 정치적 과오도 많지 않았으나 정적을 너무 많이 제거하여 적을 많이 많들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제 16대 인조 실록
선조 5남 원종 제16대 인조 소현세자
인빈 김씨 인헌왕후 구씨 인렬왕후 한씨-4남 봉림대군(효종)
장렬왕후 조씨-자녀없음 인평대군
귀인 조씨- 2남1녀 용성대군
제 16대 인조(년~년)
재위기간: 년 월~ 년 월 년 개월)
부인 명 자녀 남 녀
인렬왕후 한씨-소헌,봉림,인평,용성 대군(4명)
장렬왕후 조씨-1635년 42세로 인렬왕후가 죽자 1638년 15세 나이로 44세인 인조와 가례를 올림. 1649년 인조가 죽자 대비가 되고 1659년 효종이 죽자 대왕대비가 됨
소현세자-1625년 세자 책봉. 1637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이 있자 자청하여 인질로 청으로 잡혀감. 9년간 잡혀 있으면서 외교관 노릇을 함. 귀국 후 두달 만에 죽고 그의 처 세자빈도 사약을 받았다.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을 가 모두 죽었다.
인평대군-청에 불모로 갔으나 이듬 해 귀국 함.
인조 시대의 변란
이괄의 난-인조반정 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일으킨 난. 집권세력인 서인이 남아있는 북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음모 때문에 난을 일으켰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묘호란-이괄은 난은 평정됐지만 북방을 경비하다 난을 일으켜 죽은 뒤 북방 방위가 허술해진다.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으로 후궁과 사이가 나빠진 뒤 후금이 침입 함.
병자호란-정묘호란에 맺은 조약을 지키지 않고 후금은 더욱 악랄한 요구를 해오자 조선도 후금의 요구를 거절하고 전쟁준비를 한다. 후금은 명을 쳐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부근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후금은 청이라 국호를 바꾸고 청태종은 황제의 호칭을 사용하면서 황제 대관식에 사신을 보내고 왕자를 불모로 보내라고 요구하자 인조는 이를 거절한다. 이 후 청의 침입이 있었고 조선은 대패하고 남한산성에서 항복 한다. 조약이 체결된 후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이 예를 갖춘다. 잡혀갔다 돌아온 여인 즉 환향녀도 이때 생겼다.
제17대 효종실록
인조 차남 제17대 효종
인렬왕후 인선왕후 장씨 - 제 18대 현종외 공주 6명
안빈 이씨 - 1녀
제17대 효종(봉림대군 1619년~1659년)
재위기간: 1649년 5월~1659년 5월 10년
부인 2명 자녀 1남 7녀
병자호란 후 인조의 세 아들 소헌제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은 불모로 잡혀갔다. 인평대군은 이듬 해 돌아왔고 소헌세자와 봉림대군은 8년 뒤 즉 1645년 귀국 했다. 불모로 잡혀 있는 동안 소헌세자는 청에 수입된 서양 문물을 접하고 친 청에 가깝게 지내며 새로운 문물에 접하는 동안 봉림대군은 반 청 주의자가 되었다. 청에 원한을 가진 인조는 소헌세자가 귀국하자 전혀 반기지 않는다. 얼마 후 소헌세자가 죽자 인조는 소헌세자의 아들 대신 봉림대군을 세자 책봉 한다. 그리고 소헌세자빈의 친정 오빠등 소헌세자 세력을 귀양 보낸다. 세자빈마저 사약을 내린다.
효종은 북벌정책을 펼쳤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41세로 새상을 떠났다.
제18대 현종실록
효종 장남 제18대 현종
인선왕후 명성왕후 김씨 -제 19대 숙종외 공주 3명
제 18대 현종(1641년~1674년)
재위기간: 1659년 5월~1674년 8월 15년 3개월)
부인 1명 자녀 1남 3녀
현종시대에는 서인과 남인의 학문적 대립이 심했고 나중에는 정쟁으로 확대된다. 현종 때 동성간의 통혼을 그리고 친족끼리 같은 부서에 있거나 송사를 맡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는 상피법을 제정 하였다. 이시기에 하멜이 표류해 왔다가 탈출하여 하멜 표류기를 통해 유럽에 조선을 알렸다.
2016.12.26 블로그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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